Carpe dime!!!

Tuesday, July 25, 2006

Radiohead


Talking Heads-Radiohead



1.Members


톰 요크
vocal, guitar, piano,


마비된 왼쪽 눈을 가지고 태어난 요크는, 그가 다섯살이 되기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불완전한 시야와 트레이드 마크인 졸린 눈을 수술하는 데 썼다. 반 친구들은 종종 그를 '살라맨더(도마뱀)'이란 별명으로 부르며 놀렸다.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매이를 티비로 본 후, 요크는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7살 때 기타를 선물받고 어빙돈의 사립소년학교에 입학한 후 10살이 되었을때 처음으로 밴드에 가입한다. (그는 후에 여기서 라디오헤드의 멤버가 될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요크는 나중에 University of Exeter 에 입학하고 정신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한다.

라디오헤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가 되고, 각종 차트를 휩쓸었다. 그리고 요크의 노래는 "20세기 말의 문화"와 동의어가 되었다. 그의 가사는 과학 기술에 관한 염려, 도시서의 실존주의, 병,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요크는 또한 자유무역, 반전운동, 국제사면의 이유를 캠페인하는 정치 활동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현재 오랜 여자친구 레이첼과 두 아이들(Noah and Agnes)과 함께 옥스포드에서 살고 있다.
그는 앨범 아트워크를 할때 익명의 장식품을 이용한다.
그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들은 퀸, 섹스피스톨즈, 데이빗 보위, 캔, 픽시즈, 지미 헨드릭스이다.

Full name : Thomas Edward Yorke (Read Vocal/ Guitar/ Piano)생일 : 1968년 10월 7일학력 : Exeter대학에서 영어와 미술전공전직 : Exter의 테크노밴드인 Flickernoise에서 기타연주, 정신병원에서 근무.Key words : 창조적이다. 신중하다. 빈정댐. 변덕스러움. 활동적.좋아하는 음악 : 과거에 영향 받은 것-Elvis Costello, Scott Walker, Japan, R.E.M.
        Throwing Muses, Joy Division.
        현재-P.J.Harvey, Faust, Can, Prince Buster, DJ Shadow, Laika,
        The Verve, Penderecki.
좋아하는 것 : 사랑, 희망, 열정, 또렷한 발음싫어하는 것 : 니들이 말해봐~영향받는 것 : 수면부족기 타 : Exeter 대학교 1학년생 때 중절모와 긴 코트를 입고 놀았다;
    Steptoe & the Bunnymen chic. 아직도 옷을 좋아한다.
    다른 멤버들보다 헤어스타일을 자주바꾼다.
    노래들의 주요부분을 쓰고 나머지 멤버들이 정리하고 고친다.



조니 그린우드
guitar, keyboard, piano


조나단 "조니" 리차드 가이 그린우드는 라디오헤드의 리드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또한 밴드 멤버 콜린 그린우드의 동생이기도 하다. 그의 짧은 이름,"조니(jonny)"는 h를 뺀체로 쓰여진다. 그 이름은 존(John)이 아닌 조나단(Jonathan)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라디오헤드 팬들은 이걸 가지고 밴드 동료인 톰요크(Thom Yorke)가 조니가 빠트린 'h'를 갖고 왔다고 농담을 한다.

Full name : Jonathan Richard Guy Greenwood. 생일 : 1972년 11월 5일학력 : Oxford Poly에서 심리학전공
전직 : 없음
좋아하는 음악 : 과거에 영향 받은 것-재즈, Miles Davis, Elvis Costello.
         현재-Mo'Wax, Can, Pink Floyd
좋아하는 영화/tv/책 : "Prick Up Your Ears", "Going For Gold", "Generation X",
            "The Imperfect Art" Key words : 웃기다. 학식이 있다. 참을성이 없다.영향받은 뮤지션 : Miles Davis, Elvis Costello. 좋아하는 것 : 음반구입, 걷기, 관광, Lee morgan.싫어하는 것 : 컴팩트 디스크 사기, 운전, 녹화하기, Derek Nimmo.영향받은 것 : Frank Black, Jimmy Smith, Lee Morgan. 기타 : Colin의 친동생, 기혼,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학교에서 몽상가(The Dreamer)로 알려짐.
    옷 사기를 좋아한다. OK computer의 마지막 트랙인 Tourist를 썼다.



에드 오'브라이언
guitar, vocals


Full name : Edward John O'Brien (Guitar/Vocal)생일 : 1968년 4월 15일학력 : manchester대학에서 경제전공전직 : Barman 사진기사의 보조원Key words : 신장이 크다. 시커멓다. 미남이다. 대마초를 한다.좋아하는 음악: 과거에 영향 받은 것-Beatles, Dinosaur Jr, Joy Division, Happy Mondays,
        Smiths, NWA
        현재-Mansun, ROC, The Verve, Moloko.
좋아하는 영화/tv/책 : "Delicatessen", "Timebends", "Paris,Texas"
좋아하는 것 :라이브공연싫어하는 것 : 아첨꾼영향받은 것 : Glenn Campbell
기타: 에드의 아버지는 밴드의 운에 예민한 추종자로 잘 알려져 있다. 콜린은 이렇게 말했다.
   "걔네 아빤 음악잡지를 흔들면서 올 거에요. 새 Primal Scream싱글에 대해 얘기하려고
   말이죠". 에드는 최근에 이사를 했다.



콜린 그린우드
bass, guitar

Full name : Colin Charles Greenwood (Bass)생일 : 1969년 6월 26일학력 : Cambridge에서 영문전공.전직 : Peterhouse, Cambridge에서 경비 Our Price, Oxford에서 보조원일 함Key words : 웃기다. 독서를 좋아한다. 운전을 못한다. 수다스럽다.좋아하는 음악 : 과거에 영향 받은 것- Talking heads, The Fall, R.E.M, Tom Waits.
         현재- Ennio morricone, Prince Buster, Lee Scratch Perry 좋아하는 것 : 딸기.싫어하는 것 : "당신이 밀크쉐이크라면 무슨 맛이 될꺼냐"고 질문받는 것.영향받은 것 : Madonna, The Pointer Sisters. 기 타 : 사람들이 Coz라고 부른다.

필립 셀웨이
drums


Full name : Phillip James Selway (Drum)생일 : 1967년 5월 23일학력 : Liverpool Polytechnic에서 영어와 역사전공전직 : 투어하는 그룹에서 드럼을 침. 편집자, 영어강사key word : 조용하다. 세련됐다. 감각이 예민하다. 대머리
좋아하는 영화/tv/책 : "Shenadoah", "This Mornig", "Ask The Family", "Becoming A Mon",
           "Waterland"
좋아하는 음악 : 과거에 영향 받은 것-The Beat, Joy Division, The Ruts.
        현재-Teenage Fanclub, Tricky, Supergrass, Captain Beefheart영향받은 뮤지션 : The Beat, Joy Division, The Ruts.좋아하는 것 : 사람들이 알아볼 때, 물고기, 보드카와 터닉싫어하는 것 : 뒷무대에서 앉아있기, 무엇을 잘 모를 때영향받는 것 : 거의 매번 운이 좋았다.
기타: 종종 밴드의 정신적인 닻으로 불려진다. 너무 온화한 품성 때문에 미친 개라고도 알려졌다.
   밴드는 새로 들어온 엔지니어나 프로듀서에게 필을 건들지 말라고 일러준다. (참았던 화가
   갑자기 터지는 스타일인듯ㅡ.ㅡ;;) 케이트와 결혼했다.



2. Ex-Radiohead


옥스퍼드 외곽 Abingdon public school에 다니던 14세 소년 Thom Yorke는 그를 둘러싼 학교생활의 온갖 혼란스러운 것들에서 도피해, 조용한 음악실 한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주로 혼자 지내던 그도 학교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미래의 Radiohead 멤버들이었다.

82년. TNT라는 스쿨 펑크 밴드에 보컬로 참여하게된 Thom은 이 밴드에서 이미 베이시스트로 활약하던 동급생 Colin Greenwood를 만나게 된다. 몇 달 후 팀에 싫증을 느낀 Thom은 밴드에서 탈퇴하게 되는데 그와 함께 음악을 하고 싶었던 Colin역시 Thom을 따라서 밴드에서 탈퇴한다. 그리고 Thom과 Colin은 전부터 안면이 있던 Ed O'brien을 기타리스트로 합류시켜 그들만의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Thom이 Ed를 픽업했던 이유는 Morrissey랑 닮았기 때문이었다는...-.-;)

그들이 싸구려 드럼 머신의 도움을 받아 연습을 하던 어느 날, 그만 드럼 머신이 고장나고 말았다. 기계를 고칠 돈이 없었던 그들은 드럼 머신을 대신해 줄 드러머가 필요했고; 이것이 Phil Selway가 이 풋내기 밴드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당시 Phil은 다른 멤버들보다 상급생이었는데 그래서 다들 그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hil과의 첫 합주를 마친 Thom은 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졸라 빨리 쳐바!(Can't you play any fucking faster)' ㅡ_ㅡ;;)

Colin에게는 두 학년 아래의 Jonny Greenwood라는 동생이 있었다. Jonny는 음악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었고,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형의 밴드 생활을 부러워하던 Jonny는 우연한 기회에 형의 밴드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게 되었고, 이후 비정기적으로 연주에 참가하던 Jonny는 Thom의 권유로 밴드에 합류한다.

그들은 주로 금요일에 모여서 연습을 하곤 했는데 그래서 밴드명을 On A Friday로 정하게 된다; On A Friday는 rock, ska, punk, country등 많은 장르를 시도했었는데 한 때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자매가 정식 라인업으로 참여한 적도 있었다고... (Kid A나 Amnesiac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987년. Thom과 Colin, Ed가 대학 진학을 위해 Abingdon school을 떠나게 되자 On A Friday의 활동도 시들어지기 시작했다. 87년에서 91년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멤버들은 방학 때나 가끔씩 만나 합주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대학 생활을 하는 와중에서도 그들의 밴드에 대한 애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Ed :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일종의 헌신이랄까... 어떤 열정. 우리는 오래 전부터 그것에 대해 얘기 했었죠.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91년 여름. 밴드는 다시 예전처럼 모여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이 대학 과정을 마치고 각자 일자리를 구한 상태였던 반면에 당시 Jonny는 Oxford Polytechnic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하지만 밴드 활동과 학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Jonny는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밴드 활동에 전념할 것을 결정, 학교를 그만두고 밴드에 합류한다

당시 Abingdon 근교에는 Courtyard Studio라는 레코딩 스튜디오가 새로 생겼었는데 이것은 뮤지션 출신 엔지니어였던 Chris Hufford와 Bryce Edge가 재능을 가진 그 지역의 뮤지션들을 발굴하고자 만든 스튜디오였다. 그리고 그 '재능 있는' 뮤지션에 On A Friday가 간택;된다. Oxford scene의 진원지였던 Jericho Tavern에서 On A Friday의 공연을 보고 '홀딱'반한 Chris Hufford는 즉시 Courtyard Studio에서의 녹음을 제의했고 밴드는 이를 수락, 'Manic Hedgehog'라는 이름의 데모테잎을 제작한다.

On A Friday는 본격적으로 Oxford에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많은 클럽, Pub 등의 Minor Venue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곤 했다. 인지도가 높아지고, 공연이 계속 이어지자 밴드는 조금씩 그들이 몸담을 레이블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해결된다. Our Price라는 상점에서 일하던 Colin은 매주 가게를 찾아와 새로 나온 음반을 사가는 Keith Wozencroft라는 사람과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Keith는 Parlophone에 막 새 직장을 갖게 될 터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Colin은 그에게 'Manic Hedgehog'를 쥐어주었고 밴드의 능력을 인정한 Keith는 (On A Friday가 다른 음반사와 계약하기 전에) 재빨리 On A Friday를 Parlophone과 계약시켰다.

1991년 11월 21일, Thom이 Exter University를 졸업한지 불과 5개월만에 밴드는 Parlophone 레코드사와 정식 계약한다.
밴드가 Parlophone에 입성하자마자 한 가장 첫 번째 일은 밴드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멤버들 모두 좋아하던 Talking Heads의 [Trues Stories] 앨범에 있는 노래 제목이었던 'Radiohead'를 밴드의 새 이름으로 정하고 1992년 5월 첫 메이저 레이블 레코드인 Drill EP'를 내놓는다. Radiohead가 드디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3. History




「Pablo Honey」로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The Bends」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후 라디오헤드는 명실공히 90년대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 미디어들이 한번도 “차세대 거물 Next Big Thing”로 평가한 적은 없었으나 데뷔 이래 지금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학교 친구로 처음 알게 된 이들은 단지 음악이 좋아 밴드를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하질 몰랐던 이들은 우선 악기를 구입해 연습을 해 나가게 되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여름 방학 동안만 함께 연습을 해오던 이들은 톰 요크가 DJ로 제법 명성을 얻어가던 ’91년 여름, 카피곡 위주의 연습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주 후 팔로폰(Parlophone)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된다.


1992년
첫 EP「Drill」이 영국에서 발매되어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음 EP를 녹음하면서 연습삼아 연주하였던 [Creep]은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완성되었는데, 코러스가 시작되기 전에 나오는 격렬한 기타음은 처음부터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조니 그린우드가 노래를 망치기 위해 일부러 집어 넣은 소리였지만 오히려 라디오헤드의 신화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Creep]은 라디오에 소개되거나 차트 히트를 기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히트를 기록, 최고의 록 명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찬송가로 평가되어졌다. 국내에서도 영화 [씨클로 Cyclo]의 주제곡으로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라디오헤드의 대표적인 곡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93년
새 해를 맞아 시작된 공연이 연일 매진되는 가운데 이들의 공연을 지켜본 한 저널리스트는 “라디오헤드는 완벽하다”는 한 마디로 이들을 평가했다. 다음 싱글인 [Anyone Can Play Guitar]가 처음으로 영국 차트에 올랐고(32위) 3주 후 데뷔 앨범인「Pablo Honey」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미국내에서 브리티쉬/아이리쉬 음악의 성공을 재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다음 싱글 [Pop Is Dead]는 영국 음악계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얻지 못하고 라디오에 한두번 정도 소개되면서 차트 42위에 올랐다. 영국 미디어의 이런 냉대로 인해 라디오헤드는 영국을 떠나 유럽과 미국 투어에 오르게 된다.미국에서 발매된 [Creep]과 앨범「Pablo Honey」는 여름내내 빌보드 차트에 머물렀고 이들의 클럽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였다. 스웨이드(Suede)의 미국 투어 때만 해도 라디오헤드의 성공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93년 6월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지(紙)가 “브리티쉬 팝이 미국을 강타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하고 라디오1의 DJ 스티브 라이트(Steve Wright)가 방송에서 이 기사를 소개함으로써 영국의 미디어들도 라디오헤드에 다시끔 주목하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성공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Creep]은 영국에서 재발매되었고 차트 7위에 오른 이후 한 달 간 20위권에머물렀다. 120회가 넘는 라이브쇼 등을 통해 얻은 대중적인 인기와 [Creep]이 가져다준 전세계적인 인기는 라디오헤드를 유명하게 만든 동시에 이들에게 큰 부담감을 느끼게 했다. [Creep]이 없는 라디오헤드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 되고만 것이다. [Creep]을 위주로 한 공연이 계속되는 가운데「The Bends」앨범에 수록될 곡들이 완성되어졌고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어졌다.


1994년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등과 작업한 바 있는 프로듀서 존 렉키(John Leckie)와 함께 새 앨범작업에 들어간 라디오헤드는 자신들의 최신 노래를 공연에서 종종 선보이기 시작하기에 이른다.5월에 있었던 월드 투어는 말 그대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이 있은 후 비평가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후 [Pop Is Dead]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첫 비디오가 발매되었다.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페스티벌에서 블러(Blur)의 서포팅 밴드로 참가하는 동시에 레딩(Reading)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벌이는 등 라이브 활동이 계속 이어졌다.’94년 9월에 발표된 EP 앨범「My Iron Lung」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에는 “너무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로 평가되어졌지만 무난히 차트 30위권 내에 진입하였다. 라디오헤드의 팬들은 물론 전세계의 관중들이 이들의 음악에 매료되어 갔다.

1995년
라디오헤드의 팬들을 위한 어쿠스틱 공연에 70명 이상의 저널리스트들이 전세계에서 몰려 드는 등 시작부터 바쁜 한 해가 되었다. [High And Dry]가 차트 20위에 올랐고「The Bends」앨범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나날이 열광적으로 변해갔다. 알이엠(REM), 닐 영(Neil Young)의 공연에 참가하는 등 월드 투어에 더욱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고 “오아시스(Oasis) 대(對) 블러 시대 와해”에 영국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의 첫 대규모 공연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매진을 기록하였다. ’95년 9월, 라디오헤드는 보스니아 어린이를 위한 기금 마련의 일환으로 이루어진「Help」앨범에 수록될 [Lucky]를 녹음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처음 [Creep]이 그러했듯이 라디오에서 거의 소개되어지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하지만「Help」앨범의 대대적인 성공에 힘입어 라디오헤드는 자신들의 팬층을 넓힐 수 있었다. 소울 어사일럼(Soul Asylum)과 함께 미국 투어를 시작했지만 첫째날 장비를 도둑맞는 불행도 있는 해였다.’95년 12월까지 유럽에서 성공적인 투어를 이끈 몇 안 되는 영국 밴드로 평가받으면서 오아시스와 나란히 미국에서의 대규모 크리스마스 콘서트 무대에 오르면서 한 해를 화려하게 마감하였다.

1996년
’96년이 시작되자마자 라디오헤드는 팝계 유명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뮤지션’으로 인정받게 된다. 언론과 라디오 에어플레이의 도움없이 [Street Spirit]은 차트 5위에 올랐으며「The Bends」앨범은 다시 10위권에 진입하였다. 1년전에 발표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투어와 레코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오아시스와 함께 96년 브릿 어워즈(Brit Awards) ‘최우수 앨범’, ‘최우수 비디오 [Just]’, ‘최우수 밴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Help」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를 대표해서 톰 요크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프레디 머큐리(Feddie Mercury)상을 수상하였다.영국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투어가 계속되는 가운데 새 앨범 작업도 함께 이루어졌다. 꾸준한 라이브 활동과 함께 톰 요크는 드럭스토어(Drugstore)의 앨범에 듀엣곡을 선보였고 조니 그린우드가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타 뮤지션들과 활발한 교류를 펼쳐 나갔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공동작업-대부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에 참여하였고 여러 영화에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사용되기도 했다(자니 그린우드와 톰 요크는 영화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에서 마이클 스타이프 Michael Stipe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1997년
갤웨이(Galway) 페스티발에서의 공연으로 하이네켄 핫 프레스 어워즈(Heineken Hot Press Awards) 에서 ‘최우수 인터내셔널 라이브 연주’ 부문 수상으로 ’97년을 맞이하였다. 국내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운드트랙에는 [Talk Show Host]의 리믹스 버전과 엔딩 크레딧을 장식한 [Exit Music (Song For A Film)] 두 곡을 수록하였다.일본에서 프로모션 투어를 시작한 이들은 세계각국의 미디어를 초청한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의 라이브 쇼에서 자신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OK Computer」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곧바로 뉴욕에서 티벳 자유화 자선 행사(Tibet Freedom Benefit)에 참석하였고 LA 트루바두르(Troubador)와 뉴욕의 어빈 프라자(Irvine Plaza)에서 있었던 이들의 공연에는 마돈나(Madonna), 유투(U2),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 REM, 오아시스의 노엘/리암 갤러거(Noel/Liam Galleger), 알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블러(Blur)의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비스티 보이스(The Beastie Boys), 조안 오스본(Joan Osbourne), 셰릴 크로우(Sheryl Crow) 등 유명 인사들이 팬들과 함께 뒤섞여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97년 6월 유럽으로 돌아간 라디오헤드는 [Paranoid Android](No.3), 「OK Computer」(No.1)의 히트에 힘입어 라디오는 물론 TV에까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6분이 훨씬 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Paranoid Android]는 꾸준히 라디오에서 소개되었다.그러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이후 음악 장비가 자신들을 무대에서 돋보이게 한 것뿐이며 자신들의 사운드가 매우 미흡하다고 판단, 잠시 무대를 떠날 결심까지 하게 된다. 이런 라디오헤드의 생각은 독특한 예술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OK Computer」를 녹음할 때 곡작업과 함께 컴퓨터로 작업한 이미지들로 앨범 디자인을 창조해 갔고 이러한 이미지들은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해 8월에는 앨범 작업에 참여했던 스탠리 돈우드(Stanley Donwood)와 더 화이트 초콜릿 팀(The White Chocolate Farm)과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변화된 모습으로 영국으로 돌아온 라디오헤드는 9월부터 영국 투어를 시작했고 10월과 11월에는 유럽 투어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연티켓은 품귀현상까지 만들어 내었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매진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 이런 라디오헤드에 대해 MTV는 “지구 상에서 가장 뛰어난 밴드”라는 평가와 함께 처음으로 심층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에에 이른다.’97년은 “라디오헤드는 음울하고 침울한 분위기의 밴드, 혹은 톰 요크 혼자만의 원-맨-밴드”라는 편견을 없애기 시작한 해이기도 한다.「OK Computer」앨범은 그해 가장 혁신적인 앨범으로 평가받으며 영국내에서 여덟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Karma Police]가 [Creep]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12월19일, 뉴욕의 해머스타인 볼룸(Hammerstein Ballroom)에서 있었던 공연은 M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롤링스톤지(Rolling Stone)와 스핀 매거진(Spin Magazine)은 ’97년 최고의 밴드로 라디오헤드를 선정하기에 이른다. 또한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밴드일 뿐 아니라 지구 전체에 은총을 베푼 최고의 연주가라는 극찬이 쏟아졌지만 겸손하기 그지없는 이들은 “우리 음악을 들어주는 모든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라는 말로 기쁨을 표현하였다.

1998∼2000년
[No Surprises]가 차트 4위에 올랐고 라디오헤드는 1월부터 3월까지 일본,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얼터너티브 뮤직” 부문을 수상한 이들은 그해 3/4월 미국에서 또다시 연속 매진의 공연을 가졌고 세계 각국에서 “최우수 밴드” 혹은 “최우수 앨범”의 자리에 올랐다. 뉴욕의 전설적인 라디오 시티 홀(Radio City Hall)에서 두 번의 공연이 있은 후 톰 요크는 드럭스토어의 [El Presidente] 싱글 작업에 참여하였다.[Airbag]은 라디오헤드 수집가들의 경제적 사정을 생각해서 판매용이 아닌 한정판 싱글로 발표되었고 5월에는 이들의 두 번째 비디오이자 이때까지 발표된 커머셜 싱글들의 뮤직 비디오를 한 데 모은 [7 Television Commercials]를 내놓았는데 이 비디오는 발매되자마자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필 셀웨이는 사마리아인 협회(Samaritans)를 돕는 활동을 시작하였다.티벳 프리덤 콘서트가 갑작스런 폭풍으로 취소됨에 따라 백악관과 세계 각국의 언론들을 청충으로 캐피틀 힐(Capitol Hill)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어쿠스틱으로 연주되어진 [Street Spirit]은 전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 배우인 브래드 피트(Brad Pitt)는 라디오헤드의 뛰어난 재능과 톰 요크의 감동적인 목소리에 경이로움을 표했다.12월 2일, [No Surprise]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한 그랜트 지(Grant Gee)의 손을 거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던 장면들과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다큐멘터리 [Meeting People Is Easy]가 발매되었는데, 2000년 9월 이후에는 DVD로 다시 한 번 재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12월 10일 17,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리의 베르시 스타디엄에서 있었던 암네스티(Amnesty) 인터내셔널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였고 99년 6월에는 암스테드담에서 열린 티벳 프리덤 콘서트에 참여하였다.’99년 동안에는 글래스톤베리나 래딩 페스티벌 등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펼치지 않은 채 새 앨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2000년 10월, 마침내「OK Computer」이후 3년여만에 이들의 새로운 앨범「Kid A」가 발표되었다.


2000년

4월 새 앨범의 녹음을 모두 마친 후 Radiohead는 6월과 7월 유럽 투어에 나서고, 9월부터 다시 시작된 투어가 진행중이던 10월 2일 네 번째 앨범 [Kid A]를 발표한다. [Kid A]는 싱글 앨범도 발매하지 않는 등 프로모션에는 거의 공을 들이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둔다. 밴드는 다음 앨범 작업을 위해 11월에 곧바로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2001년

6월 4일, 다섯 번째 정규앨범 [Amnesiac]을 발표한 Radiohead는 전작 [Kid A] 발표 때와는 달리 나름대로 활발한 홍보작업을 벌이게 된다. 싱글 커트된 'Pyramid Song'과 'Knives Out'의 뮤직비디오가 각각 제작되고, 'I might be wrong'은 인터넷에서만 비디오가 공개된다. 새 앨범의 발표는 유럽, 북미, 일본 투어의 매진 사태로 이어졌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7월 7일, 그들의 고향인 Oxford에서 열렸던 공연이었는데 Sigur Ros와 Beck, Supergrass가 함께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 날, 97년 Ok Computer 투어 이후로 들을 수 없었던 'Creep'을 Radiohead가 마지막 앵콜곡으로 부르게 된다.(듣고 눈물 흘렸다; ㅠ.ㅠ) 며칠 후, 파격적이어서 유쾌한 그 애니메이션 'South Park' 7월 11일 에피소드에 Radiohead 멤버들이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11월에는 투어의 결과물로 라이브 앨범 [I might be wrong - live recordings]를 발표한다


2002-2004년

레코딩은 이제 다음 앨범을 향해가고 있었다. Hail to the Thief, 전작과는 눈에 띄게 다른 앨범이었다. 그들은 더 밴즈 세션의 페이스와 비견될만 했다. 밴드는 2002년 7,8월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투어하는 동안에 그들의 새 앨범에 들어갈 만한 노래를 뽑는다. 투어중에 몇몇 노래들이 선보여 졌고, 밴드는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완성했다. 2003년, 밴드는 그전보다는 덜 실험적이나 아직도 초기의 기타 연주와는 거리가 있는 그들의 6번째 앨범을 선보인다.
앨범의 제목은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비판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미국에서 논쟁거리가 되었다. 밴드 멤버들은 이 주장을 부인했다. 2003년 6월 스핀 매거진에서 톰 요크는 "만약 우리 앨범 작명의 동기가 오직 미국 선거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난 그것이 매우 천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대신 요크는, Hail to the thief가 1888 미국 선거 논쟁에 관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따온 문장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2000년 선거 캠페인 논쟁의 끝에서 부시를 백악관에 집어넣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hail to the thief"가 추가적으로 안티부시 슬로건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부시의 취임식날, 그는 " 도둑에게 경배를, 우리들의 도둑 사령관 만세" 라고 소리치는 수천명의 항의자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앨범 발매 2주전, 그들이 일하고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완성되지 않은 앨범이 도둑맞았고 인터넷으로 업로드 되었다. 불행하게도(?) 오리지널 앨범 레코딩도 같은 운명이었다. 그러나 밴드는 굴하지 않았고 앨범 발매일을 앞당기지 않고 예정된 날짜에 발매했다. 2003년 6월 9일, 앨범이 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최근 두 앨범 모두 상승세를 타고 판매되었다. Hail to the thief는 라디오헤드의 최근 세 음반의 영향을 담고있다.-약간의 일렉트로닉, 앰비언트적 요소들과 새로운 실험적인 사운드를 포함한-. 앨범은 Kid A나 Amnesiac보다 기타에 기반을 둔 음악이 더 많았다. 앨범은 팬들과 언론 모두에게서 환영받았다. OK computer의 발매 다음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와 공연은 밴드 스스로가 그들의 앨범에 만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요크와 밴드멤버들이 싱글거리며 무대위에서 춤추는 동안 그들은 어떤 인터뷰에나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그 후, 라디오헤드는 1년간 지속되는 국제 투어를 시작한다.

2004-현재
긴 기간 동안의 투어를 마친후에 남은 2004년동안 밴드 멤버들은 각각 다른 뮤지션들과 솔로 프로젝트와 레코딩을 하면서 지나갔다. 주도격 멤버인 톰요크와 조니 그린우드가 앞장섰다. 드러머 필 셀웨이가 전과는 달리 공동제작에 참여한다. 그는 공동제작자인 samaritans와 함께 오랜 기간 작업한다. 에드 오브라이언과 콜린 그린우드는 아버지가 되었다. : 살바도르는 2004년 초에 태어났고 이젠 새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밴드는 DVD The Most Gigantic Lying Mouth Of All Time을 발매한다. 그린우드와 필은 다음 해리포터 영화-해리포터와 불의잔-에 까메오로 출연한다. 조니는 클래식 음악을 만들기로 하고 BBC의 작곡가가 된다. 그와 톰은 Aid 20 프로젝트에 참여해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한다. 2004년에 라디오헤드는 시규어 로스 Merce Conningham과 공동 작업을 하였고 Barbican Theatre 에서 공연된다.
톰과 조니는 새로운 작업들을 london sinfonietta orchestra와 함께 ether festival에서 2005년 3월에 공연한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지 1년 후 라디오헤드는 다시 레코딩 세션으로 돌아왔다. 3월 초에 톰요크는 밴드의 공식 메세지보드에 밴드가 작업을 시작했다고 공지했다. 3월 말, 조니 그린우드는 밴드가 첫번째 앨범을 녹음했던 곳에서 리허설을 하고 새 노래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 지금 우린 리허설 중입니다. 다시 재밌어졌어요. 우리는 앞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와 같은 다섯사람을 보게 되면 더 이상 좋은 걸 바랄 수는 없을거에요."
조니에 따르면 레코딩 작업은 BBC와 그의 약속때문에 약간 지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ther Festival에서의 톰과 조니의 공연에 이어 에드 오브라이언은 라디오헤드가 벌써 새 앨범 녹음작업을 하는데 4주를 썼다고 말했다.
4월 15일 Trade Justice Movement에서 톰요크는 새로운 노래 " House of Cards"와 "Las Flowers( till the Hospital)" 를 선보였다. 4월 17일, 그는 밴드가 Arpreggi라는 새로운 곡을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톰은 노래가 거의 끝나가고 있지만, 라디오헤드의 새 앨범이 언제 나올지는 말할수 없다고 했다. 톰에 따르면 새 앨범은 정말 나올 예정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언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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